가을유서
류시화
가을엔 유서를 쓰리라
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이 노트 위에
마지막 눈 감은 새와 흰
눈껍풀 위에
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
한장의 유서를 쓰리라
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
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
하루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
나 유서를 쓰리라
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있는
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
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
고독한 시체 위에
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
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
가장먼곳에서
'나의 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자살 (0) |
2019.04.18 |
속눈썹 (0) |
2019.04.18 |
거리에서 (0) |
2019.04.17 |
첫사랑 (0) |
2019.04.17 |
짧은 노래 (0) |
2019.04.17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