가을에는 떠나리라
김종해
바람부는 날 떠나리라
흰 갓모자를 쓰고 바삐 가는 가을
궐 안에서 나뭇잎은 눈처럼 흩날리고
누군가 폐문에 전 생애를 못질하고 있다
짐의 뜻에 따라
가야금 줄 사이로 빠져 나온 바람은 차고
눈물이 맺혀 있다
떠나야 할 때를 알면서
짐이 이곳에 머뭇거리는것은
아직 사랑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
아직 그리워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
흐르는 물이 가는 길을 탓하지 않으며
손금 사이로 흐르는 일생을 퍼담는다
슬픔이 있을 것 같은 날을 가려
이 가을에는 떠나리라
그대앞에 봄이있다시집중에서